2008. 1. 2. 15:23

상아 젓가락

은나라의 주왕이 상아 젓가락을 만들자

기자는 그것이 두려워서 이렇게 말했다.


“상아 젓가락을 만들면 국을 흙으로 만든 오지그릇에

담을 수 없고 반드시 뿔이나 주옥으로 만든 그릇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주옥 그릇이나 상아 젓가락을

사용하게 되면 반찬은 콩이나 콩잎으로는 안 되고,

반드시 쇠고기나 코끼리 고기, 표범고기를

차려 놓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고기를 먹게 되면 아무래도 짧은 털가죽이나

초가집에서는 살 수 없는 노릇이므로, 반드시 비단옷을

입어야 하고 고대광실에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을 상아 젓가락의 격에 맞추다보면

천하의 재물을 총동원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기자는 결국 주왕을 버리고 머나먼 동쪽 나라로

망명을 택한다. 상아 젓가락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서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서시가 실존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설이 있지만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로는

월나라 왕인 구천과 서시의 이야기가 있다.


구천은 자신의 철천지원수인 오나라 왕 부차에게

이 미인(=서시)을 바쳐 오나라를 결국

사치와 향락에 빠지게 만들었다.


서시의 용모는 감히 범접하기 어려울 만큼 빼어나

그녀가 빨래터에 나와 빨래를 하노라면 쳐다보던

남정네들이 물속에 비친 그녀 모습에 반해

정신없이 물에 뛰어들 정도라 했다.


구천의 계략대로 오나라 왕 부차는 서시의 미모에

빠져 조금씩 조금씩 나라일을 등한시하다가 결국

멸망하기에 이르렀다. 서시는 중국의 역사상 양귀비

등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4대 미인으로 꼽힌다.


어느날 월나라에서 조공을 받은 오나라 왕은

서시에게 선물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면서

아무것이든 골라 가지라고 말했다.

서시는 그 많은 선물을 다 그만두고

상아 젓가락 한 벌만 받아들였다.


왕이 그녀에게 왜 값진 보물을 다 놔두고

상아 젓가락만 가졌는지를 묻자 그녀는

어릴 적 집이 가난하여 상아 젓가락 한 벌

갖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둘러대었다.


그러나 그 상아 젓가락에는 나뭇가지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그림과 거기에 ‘월조소남지 (越鳥巢南枝)‘

라는 의미심장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 구절은

‘월나라 새는 남쪽 가지에만 둥지를 튼다’는 의미로,

변심을 경계하는 뜻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서시는 월나라 사람임)


사실 상아 젓가락을 쓰면 그만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준비와 도구가 필요하고 거기에 걸맞는 식탁이라든가

일꾼이 있어야 하고 또 그 일꾼들이 거처할 궁궐이 필요하다.

이처럼 작은 것을 용납함으로써 사치는 점점 확대되기 마련.

서시는 이런 각오로 오나라 왕의 사치와 향락을 부추겨

결국 나라를 망하게 이끌었던 것이다.


그때로부터 수천년이 지나서 바야흐로 디지로그 사회에

이른 오늘날, 이 고사는 작은 방심과 허용이 큰 문제를

일으킨다는 경계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이어령 "디지로그"
http://blog.naver.com/frog530?Redirect=Log&logNo=50011383142